'무조건 싸게, 빨리' 설계…건축 망치는 지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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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도면은 제 값 주고 제대로 그려야 낭패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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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설계는 전체 건축 공정의 첫 단추와도 같다. 설계가 잘못되면 이후의 공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중소형 건축물(일명 '꼬마빌딩') 건축에서는 문제가 발생하면 모두 건축주가 떠 안아야 한다. 건축주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무형의 서비스에 대가를 지불하는 데 매우 인색하다. 그러다 보니 건물을 지을 때 다른 부분에는 아낌없이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설계에는 돈을 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시공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해 낭패를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건축비 아끼려다가 두고두고 골머리



여기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설계비를 아끼려다 그 댓가를 톡톡히 치른 사례가 있다. 서울에 꼬마빌딩을 지으려던 S씨의 사례다. 그는 건물을 몇번 지어본 경험이 있는 건축주였다. 부지런하게 발품을 팔아 역세권 요지에 30평짜리 알짜 자투리 땅을 찾아낸 그는 이 땅에 8층짜리 오피스텔·고시원 건물을 짓기로 하고 설계를 해줄 업체를 찾았다. 

처음에 S씨는 디자인을 고려해 유학파 건축가에 설계를 의뢰하려고 했다. 하지만 예산이 부족했던 그는 결국 설계비를 아주 저렴하게 받는 구청 근처의 건축사 사무소에 설계를 의뢰했다. 하지만 설계 뒤 과정이 녹록치가 않았다.

우선 인허가 과정에서 미처 예상치 못했던 각종 심의가 불쑥 튀어나오는가 하면, 기계식 주차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건축주가 직접 민원을 넣어 해결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인허가 일정이 길어졌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S씨가 지으려던 건물은 생활 가전이나 가구를 기본적으로 모두 갖춘 풀옵션 임대용 건축물이라 인테리어 설계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건축 설계 전혀 반영되지 않은 탓에 현장에서 도면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S씨는 결국 설계와 시공 기간이 예상보다 두 배 가량 지연됐다. 공정 지연은 곧바로 추가 비용 발생으로 이어졌다. 특히 금융 비용 증가에 대한 부담이 컸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Project Financing) 대출을 받아 건물을 지으려던 건축주 S씨는 하루하루 늘어나는 이자 지출에 골머리를 앓을 수 밖에 없었다.
 

▲ 전문가와 시간과 충분히 갖고 적정 설계비를 상의해야 성공적인 건축 프로젝트를 기대할 수 있다. ※사진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기사 내용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대충 작성한 인허가용 도면으로 시공 견적을 의뢰했다가 어려움을 겪은 사례도 있다. 본인이 거주할 집을 지으려던 J씨는 잘 아는 설계사무소가 없어 측량사무실이 소개하는 설계사무소에 설계를 의뢰했다. 설계 미팅은 단 한 번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건축주와 건축사는 약 60평 정도 규모의 2층 집에 방 3개와 거실, 주방, 욕실 2개, 다락방이 필요하다는 조건만 얘기하고 예산이나 디자인 등에 대해서는 자세한 협의는 하지 않았다.

건축사는 60평 규모의 도면을 3개 정도 꺼내 와서 건축주에게 그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건축주가 도면을 고르자 2주만에 허가 도면이 나왔다. 이후 건축 신고 접수와 완료까지 2주가 더 소요됐다.

건축주는 그 사이에 시공사에 견적을 의뢰했다. 그런데 일주일만 3개의 시공사로부터 견적을 받아 보니 견적 내용이 제각각이었다. 견적서를 제대로 검토할 수 없었던 건축주는 필자에게 견적서를 가져와서 자세하게 검토해달라고 의뢰했다.

건축주로부터 의뢰를 받아 견적서를 검토해 보니 서로 자재 스펙이 모두 달랐다. 상세 견적서를 제출한 업체도 없었다.

같은 허가 도면으로 견적을 냈는데 왜 업체마다 다 다른 견적서를 보내왔을까. 대개 허가방에서 작성하는 인허가용 도면은 가장 기본적인 도면이다보니 모든 마감재가 '지정 마감재'(구체적인 스펙이 지정되지 않고 나중에 건축주가 시공사와 협의하여 지정을 하는 마감재)로 표기된다.

예컨대 같은 새시(창호재)라도 브랜드마다 스펙이 다르고 가격 차이가 있다. 대부분 대기업 제품일수록 가격이 좀 높게 나온다. 바닥재, 붙박이 가구, 조명 등도 그렇다. 이 때문에 100평 정도 규모의 건축물을 기준으로 했을 경우 창호재만 해도 1000만원 단위로 가격에 차이가 날 수 있어 예산에 맞춰 자재를 골라야 한다.

그런데 이 경우 설계도에 제품 스펙이 지정돼 있지 않으면 시공사가 견적을 낼 때 임의로 제품의 단가를 입력하게 된다. 창호, 내외부 마감재는 특히 영향이 크다. 조명, 가구도 디자인 레벨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공사는 별도 견적으로 넣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럼 도면이 상세하지 않아 견적이 부정확해지는 문제를 피하려면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일단 기본 허가 도면으로 허가를 신청한 뒤 3주 정도 걸리는 허가 기간 중에 자재 스펙을 지정하고 비교 견적을 하면 된다.

'가설계 무료'라는 악순환의 고리



잘못된 가설계 관행도 문제다. 일반적으로 건물 건축용 토지를 매입할 때는 사전에 매입하려는 토지가 건축의 용도와 맞는지, 건축 규모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지 검토를 한 뒤 해당 부지를 매입하게 된다. 그런데 부동산에서 건폐율, 용적률, 층수 등에 관한 정보는 얻을 수 있지만, 그 외 건축법과 관련 법규에 대해선 파악이 어렵다.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건축과 담당 공무원에게 문의를 해봤자 담당 공무원은 물어보는 것에 대해서만 대답을 해 줄 뿐이다. 공무원들은 모르는 사실을 일부러 친절하게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도면을 가지고 와야 이야기를 들어주는 공무원도 있다. 도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건축사사무소에서 상담을 하고 기본 도면을 의뢰해야 한다. 

그 기본 도면을 만드는 작업을 소위 ‘가설계’라고 한다. 대부분의 건축주는 가설계를 무료로 알고 있지만, 건축사사무소의 입장은 설계 계약을 한다는 전제하에 무료로 해주는 거다. 그게 아니라면, 가설계를 의뢰하려면 가계약을 해야 하는 게 맞다. 본 계약을 하게 되면 가계약금은 계약금에 포함시켜주게 된다.

대한건축사협회에서 기획설계업무 계약서를 만들고 홍보하고 있지만, 이미 관행이 되어 버려서 쉽지 않은 일이다. 세무사·변호사 등의 전문가와 상담을 하면 시간당 상담료를 지불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건물의 규모를 검토해주고 심지어 외관 디자인까지 포함한 가설계를 무료로 요구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건축사 사무실 입장에서는 그 자료를 만드는 시간을 인건비로 계산하면 상당한 비용이 나온다. 

‘설계사무실의 능력을 모르니 시험해보고 싶은데 뭐가 나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짧은 시간에 내놓은 가설계라는 도면은 심사숙고에서 나온 결과물이기보다는 그 사무실의 기존 작업 중에서 골라 내놓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가설계도면을 몇 군데 받아 보고 비교해봐야 다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설계 과정 중 법규 검토란 극히 일부의 작업이어서 그것만으로 설계사무소를 고르는 기준은 될 수 없을 것이다. 건축가의 포트폴리오를 보거나 실제 지어진 건물을 방문하거나, 그 건물의 건축주를 만나보는 방법이 더 확실할 것이다. 

결정적으로 가설계가 문제 되는 것은, 이것이 일종의 ‘갑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설계를 의뢰할 수도 있으니, 일단 한번 그려보라는 자세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는 행태이다.

병원에 가서 “일단 치료해 봅시다, 상태가 괜찮아지면 치료비 지불할게요”라거나, 혹은 식당에 가서 “일단 한 그릇 먹읍시다. 맛있으면 돈 낼게요”와 같은 말도 안 되는 행태가 건축계에서는 통용되고 있고, 그 결과 건축사사무소들이 어려움에 처하고, 그 결과 설계의 질이 떨어지고, 그 결과 전체 건축문화의 수준이 낮아지는 악순환이 생겨버렸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원스톱 서비스’의 함정



건축박람회가 1년에도 몇 차례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의 주요 도시에서도 개최되고 있다. 건설회사나 주택 전문 회사들은 모델하우스를 지어 놓고 “설계부터 시공까지 원스톱으로 해 드립니다.”라는 서비스로 고객을 유치한다. 자사에 설계 파트가 있어 시공계약을 하면 설계는 서비스로 해 준다고 한다.

하지만 건설회사는 시공을 함으로써 회사 이익을 내는 것이 목적이다. 설계는 부수적인 업무로서 일단 시공계약을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계약을 서두르기 위해서 그동안 작업한 설계도면 중에서 하나를 골라 약간의 변경을 해 주기도 한다. 

몇 가지 타입만을  만들어 놓고 주변 환경은 고려하지 않은 채, 서로 다른 대지에 억지로 적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바로 옆집 건물의 창이 있는데, 그 창을 마주해서 큰 전망 창이 생기는 황당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설계는 서비스로 해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대지에 맞는 설계를 따로 하지 않는다. 시공 견적서를 잘 살펴보면 설계비는 시공비 안에 숨겨져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설계에서 시공까지 원스톱이면 건축주가 신경 쓸 일이 없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단점도 있다.

예를 들어 시공사의 이익을 위해 시공사가 시공하기 쉬운 자재와 시공법만을 추천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디자인의 다양성이나 창조성은 기대하기 힘들다. 또는 시공사가 자재비를 절감하기 위해 모든 집에 같은 자재를 사용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집들이 사이즈만 다른 기성복처럼 되어버린다. 건축주는 개성 있는 단독주택에 살고 싶은데, 옆집들이 다 똑같은 아파트가 되어버리는 셈이다.

충분히 검토ㆍ작성된 설계가 건축물 가치↑



기본설계라는 것은 배치, 평면, 입면의 결정을 위해 CG나 모형, 스케치를 보면서, 건축주와의 피드백을 통해 디자인을 결정해 가는 과정이다. 공간감, 거리감, 스케일 감이 부족한 건축주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고 완공된 후의 예상도를 제시하여 기본설계를 확정한다.

또 이 단계에서 내외장 마감재뿐만 아니라, 가구, 도기, 조명 등 각종 인테리어 사양도 확정한 후, 공사에 필요한 실시설계도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계 기간의 여유가 필요하다. 설계도서가 정확하고 자세할수록 공사 중 변경이 적어 공정에 영향이 없고, 추가 공사비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제대로 된 설계를 하고, 설계대로 시공될 것을 원한다. 기본설계 단계에서 정한 디자인, 구조, 마감 등 모든 것이 예산안에서 원래의 의도대로 완공되어야 비로소 자부심을 가지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을 완성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건축가는 건축주, 시공사, 그리고 그 건물을 사용하는 사용자까지 만족하는 건물을 설계하는 것이 목적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법적 감리자로 지정되지 않아도, 사용승인까지 현장을 감리하는 계약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 일반인들도 수많은 디자인을 접하고 안목을 높일 수 있다. 건축과 학생들도 자료나 작품집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전 세계의 건축물들을 접한다. 디자인의 홍수 속에서, 멋지기만 한 디자인이 아니라 도시를 생각하고 주변의 환경을 고려하는 디자인을 골라낼 수 있는 건축가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좋은 건축물 더 나아가, 좋은 건축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건축주들이다. 물론 경제적 이익이라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그와 함께 도시, 환경, 문화도 고려하는 건축주들이 늘어가기를 기대한다.

 
 
<본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중앙일보조인스랜드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장진희
- 설계
- 스튜디오 모쿠 대표/소장
- 신구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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