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복지 로드맵 후폭풍…수도권 집값 흔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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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공급과잉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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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은 신혼부부 등 젊은 층과 무주택 서민의 주거 안정책이다. 수단은 대규모 임대주택 공급이다. 전혀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이미 대통령 공약에 포함됐고 지난 8·2부동산대책 때 윤곽을 잡은 청사진이 구체화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거문제 해소’ 공약으로 공적 임대주택 매년 17만 가구 공급, 공공임대 총 20만 가구 신혼부부 공급, 청년 임대주택 30만실 공급 등을 약속했다. 
  
정부는 8월 2일 발표한 ‘실수요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의 하나로 공약에서 한발 더 나아간 ‘서민을 위하 주택공급 확대’를 발표했다. ‘신혼희망타운’ 5만 가구 등이 포함됐다.
  
당시 “9월 중 주거복지 로드맵을 통해 세부내용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로드맵에서 공적임대주택 연 17만 가구 세부 공급계획 및 신혼희망타운의 구체적인 공급대상·주택유형·시범사업 입지 등을 확정하기로 했다. 
 
당초 예정보다 2개월 늦어지긴 했지만 이번 로드맵은 공약과 8·2대책의 연장 선상이다.
 
그런데 이번 로드맵은 주 내용인 주거복지 외에 주택시장에 상당한 후폭풍을 일으킬 수 있는 ‘무기’를 장착하고 있다.  ‘수도권 공급 폭탄’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년부터 수도권 입주 물량이 급증할 예정인데 계속해서 대규모 공급이 이어지면 수도권 주택시장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2022년 수도권 주택보급률 107%"


정부는 로드맵에서 공적임대를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공급하고 공공택지를 늘려 2022년까지 수도권 주택보급률(일반가구수 대비 주택수 비율)을 107%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2015년 말 기준으로 수도권 주택보급률은 97.9%다. 집이 필요한 가구는 921만 가구인데 집은 900여만 가구다. 2022년 주택보급률이 107%로 올라가려면 2016~22년 7년간 200만 가구 정도 필요하다. 지난해와 올해 완공되는 55만 가구 정도를 제외하면 내년부터 140만여 가구가 들어서야 한다. 
 
정부는 기존 분양 물량과 주택건설 인허가 실적을 바탕으로 내년과 2019년 입주 물량을 각각 31만 가구와 26만 가구로 보고 있다. 여기다 2020~22년 3년간 90만 가구 정도, 연평균 30만 가구가 필요하다.    
 
이는 기존에 공급된 양이나 당초 정부 계획보다 훨씬 많은 규모다. 분양 물량이 역대 최대였던 2015년 이후 쏟아지면서 지난해부터 수도권 입주물량이 25만 가구를 넘었을 뿐이고 이전에는 20만 가구를 넘지 못했다. 2005~15년 연평균 입주물량이 18만 가구다.     

이는 정부가 2013년 2차 장기주택종합계획을 세울 때 잡은 수요보다 30%가량 많은 물량이다. 2013~22년 연평균 수요는 21만6000가구였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물량을 어떻게 공급할 수 있을까. 공공이 앞장서서 대규모 공공택지를 조성해서다.   
 

대규모 공공택지 개발 통해 주택공급 확대

 
정부는 기존에 확보된 77만 가구 규모의 공공택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신규로 40곳을 만들기로 했다. 신규 40곳은 16만 가구를 지을 수 있는 땅이다. 여기다 민간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연간 8만5000가구의 주택용지를 제공한다.
 
 
정부는 이들 공공택지 물량 대부분을 수도권에 집중할 계획이다. 로드맵에서 2018~22년 공적임대·공공분양 100만 가구의 60%수준인 62만 가구를 수도권에 공급하기로 했다. 민간주택용지 8만5000가구의 73%인 6만2000가구를 수도권에 배정한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 쓸 수 있는 수도권 공공택지를 기존 45만6000가구에서 신규 지정한 공공택지 10만 가구와 합쳐 55만6000가구로 확대한다.
 
공공택지를 통한 대대적인 주택 공급은 과거 노무현 정부 방식이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8개월 뒤인 2003년 10월 29일 ‘주택시장안정 종합대책’을 통해 주택정책 로드맵을 제시했다.

공급 확대 정책의 핵심은 김포·파주 신도시를 개발해 신도시 주택공급을 크게 늘리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 역대 정부 중 가장 넓은 면적(1억8000여만 ㎡, 98곳, 100여만 가구)의 공공택지가 지정돼 개발에 들어갔다. 수도권 택지공급 실적도 김영삼 정부 이후 가장 많은 1억3200만㎡였다. 이번 정부와 마찬가지로 공공 주도의 주택 공급 대책이었다.   
 

장기주택종합계획보다 40만 가구 과잉

 
정부 계획대로 주택 공급이 이뤄지면 수도권 주택 시장이 공급 과잉 몸살을 앓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2차 장기주택종합계획에서 추정한 2013~2022년 수도권 주택수요는 총 210만여 가구다. 2022년 수도권 107% 정도의 주택 보급률을 달성하려면 이 기간 250여만 가구가 공급된다. 수요보다 40만 가구가 더 많은 물량이다.  
 
2015년 역대 최대 분양물량이 쏟아지면서 그해 말부터 공급과잉 우려가 나왔다. 그해 전국에 분양된 물량이 52만 가구이고 수도권은 27만 가구였다. 2016년에도 예년 수준보다 훨씬 많이 분양됐고 이는 2017~18년 수도권에서 60만 가구에 달하는 대규모 입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일부에선 금융위기 이후 부족한 공급을 고려하면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 있었다.
 
2013~18년 장기주택종합계획의 수요는 130여만 가구인데 공급량은 140여만 가구로 10만가구 더 많은 정도다. 입주 물량 급증에 따른 ‘소화 불량’이 생기더라도 오래 가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그런데 공급 폭탄이 내년부터 1~2년에 그치지 않고 2022년까지 5년 간 장기적으로 투하된다면 상황은 훨씬 더 악화된다.   
 
매에는 장사가 없듯 지속적인 공급 폭탄을 맞으면 시장이 버텨내기 힘들다.
 

지방은 공급과잉으로 이미 전셋값부터 약세

 
이미 지방은 공급 과잉 후유증을 앓고 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지방에서는 2차 장기주택종합계획에서 추정한 수요(70만여 가구)보다 20여만 가구 많은 100만 가구 가까이 입주했다. 올해도 연평균 수요(17만여 가구)보다 많은 23만여 가구의 주택이 10월까지 벌써 들어섰다. 올해까지 합치면 공급과잉 물량이 30만 가구가량이다.   

2008년부터 연간 1% 넘게 오르던 지방 집값은 지난해부터 상승세가 확 꺾였다. 집값 기대심리가 작용하는 매매시장보다 공급 효과가 확실하게 나타나는 전세시장에선 전셋값이 2004년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올해 하락세로 돌아섰다. 월세는 지난해부터 약세다.  
 
수도권 공급과잉은 대출규제 등 정부의 강도 높은 주택수요 억제 대책으로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지방 집값이 임대료와 달리 올해까지 상승세를 이어가는 이유는 집값 상승 기대감이 남아 있고 정부 규제가 본격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택산업연구원·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입주 급증을 주된 이유로 하나같이 내년 지방 집값을 약세로 보고 있다.  
 
결국 정부는 ‘인해전술’로 전·월세난을 잡고 임대시장을 안정시키는 셈이다.  
 

계획대로 주택공급 늘리기 어려워

 
그런데 정부 의도 대로 공급이 이뤄지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노무현 정부도 초반에 야심 찬 주택공급 계획을 세웠지만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다. 당시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연평균 전국 50만, 수도권 30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했다. 이중 공공임대주택은 전국적으로 연평균 15만 가구였다.

임기 동안인 2003~2007년 수도권 공급 계획 물량은 150만 가구인데 실제 공급된 물량은 절반 정도인 78만가구에 그쳤다.  
 
같은 기간 공공임대주택은 전국적으로 75만 가구 계획했지만 사업승인된 물량은 70% 선인 56만 가구였다. 공공임대주택은 정부 뜻대로 밀어붙일 수 있는 분야인데도 당초 목표에 30%나 미달됐다.    
 
이번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여 공공임대 등 공공이 공급하는 주택은 계획대로 공급하더라도 민간이 제대로 공급할지가 관건이다. 공공물량을 제외하고 민간이 수도권에서 공급해줘야 할 물량은 연간 15만~20만 가구 정도다.  
 
수도권 민간 주택공급 물량은 분양승인 기준으로 2011~2014년 6만~9만 가구였고 분양 호황기였던 2015~2016년에는 15만 가구가 넘었다.  
 
정부의 청약 규제, 전매제한 강화, 중도금잔금 대출 제한 등으로 내년 이후 민간 분양시장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재건축·재개발 없이 서울 주택공급 어려워

 
주택보급률 수치를 올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수도권에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80여만 가구가 공급됐는데 10년간 2% 포인트 밖에 오르지 못했다. 2015년 기준으로 2022년까지 7년 새 10%포인트를 올리기가 만만찮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도 2002년 91.6%(과거 통계 기준)인 수도권 주택보급률을 2012년까지 112%로 끌어올리겠다고 했으나 실제 2012년 주택보급률은 106%였다.   

한가지 더. 공급 폭탄이 떨어지더라도 서울은 비껴갈 것 같다. 서울에 공공택지를 개발할 땅이 많지 않다. 민간의 재건축·재개발 사업도 내년 이후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재건축 조합원 명의변경 금지, 입주권 거래 제한 등으로 한풀 꺾일 가능성이 크다. 서울에선 민간이 주택공급 큰 손이다. 서울 주택공급의 85% 정도를 민간이 맡고 있다. 
 
서울 외곽을 중심으로 한 물량 공세가 성공할지 두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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