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침대, 안방에 와인룸…내 멋대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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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시대 '집 개념 새로 짓기'

쓸쓸하다. 좁다. 아, 가장 결정적으로 궁상맞다. 흔히 1인 가구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다.

하지만 열 집 중 세 집이 혼자 살고 있는 지금(2016년 통계청 발표, 전체 가구 중 27.6%), 정작 나혼자 사는 이들이 집을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지고 있다. 가구·소품 등에 투자하며 집을 가꾸는 것을 넘어서 자신만의 취미·놀이를 즐기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제3의 공간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중이다.

트렌드를 발빠르게 반영하는 TV 프로그램 역시 이같은 독신 연예인들의 삶을 밀착해서 보여주고 있다. 사는 이의 라이프스타일이 오롯이 드러나는 1인 가구의 집, 달라진 패러다임과 그 속사정을 알아봤다.
 
혼자라서 가능한 와인 룸 안방, 침실인 거실

3월 8일부터 닷새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리빙디자인페어'.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선보이는 이 행사의 올해 주제는 '우리 집에 놀러와'다.

주최 측은 "다양한 가족 유형에 따른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만큼 집의 역할에 대해 고민할 때"라면서 "취미·놀이·초대의 각 테마로 나눠 집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는 디자이너·건축가들이 주제에 맞춰 공간을 꾸미는 '디자이너스 초이스'에서 보다 구체화됐다. 거실을 티룸·라운지바 겸용으로 꾸민 싱글남의 집(김종완 디자이너), 주방과 식당·화장실 벽을 없앤 독신·무자녀의 집(백종환 디자이너)이 제시됐다. 거실엔 TV와 쇼파, 안방엔 침대, 부엌엔 식탁이라는 식의 집에 관련한 고정관념을 깬 것이다.

그저 상상 속 전시라고? 아니다. 이미 집의 재구성은 현실에 들어와 있다.

특히 1인 가구가 주도적이다. 와인 전문가이자 칼럼니스트인 김상미(50)씨는 혼자 사는 112㎡(34평) 집 안방을 와인 룸으로 꾸몄다. 각각 크고 작은 셀러 두 개를 놓고 와인잔 30~40개에다 와인책까지 구비했다. 가운데 큰 테이블을 놓아 최대 12명까지 앉을 수 있다.

"와인 자체에 집중하려면 가급적 다른 음식 냄새가 베지 않는 공간이 필요하고 와인 보관 역시 직사광선을 피하는 게 좋다"라는 이유에서다. 김씨는 "가족과 함께 살면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만족감을 표현한다.

1년 전 부모로부터 독립한 직장인 황다나(36)씨도 자신의 취향에 맞게 집을 재구성했다. 안방 대신 거실에 침대를 놨다. 정작 방에는 작은 다이닝 테이블을 뒀다.

작은 아파트(56㎡)다보니 거실이 가장 넓고 가장 환해 이런 결정을 했다. "워낙 볕이 좋은 곳에서 지내는 걸 좋아하는데 굳이 집에 있는 동안 어두운 방에 있을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는 다용도실로 쓰이던 베란다를 깔끔하게 정리해서 티테이블과 의자까지 마련했다. 바람이 좋은 날, 음악을 틀어 놓고 지인과 차나 와인 한 잔을 즐기기에 딱이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독신들이 집을 이처럼 다르게 활용하는 건 집을 온전히 나만을 위한 개인 공간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설문조사 사이트인 마이크로밀 엠브레인의 '집의 의미 및 홈 인테리어(2016)' 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 응답자는 집을 '나만의 공간''쉼터'로 답했지만, 2~5인 이상 가구 구성원은 '가족을 의미하는 공간' '재산 증식의 수단'이라고 많이 답했다.

특히 소득이 높아지는 30대 이후에는 주거 면적도 66~128㎡대로 늘어나면서 집의 재구성이 훨씬 쉬워진다. 성신여대 이향은 교수(서비스디자인공학)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주관적 소비를 하는 성향이 집이라는 공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욜로(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로,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여 소비하는 태도)'로 대표되듯, 기성세대처럼 살 필요가 없다는 의식이 빠르게 확산되는 또 다른 예인 셈이다.
 

▲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백종환(오른쪽) 디자이너는 집의 구획을 없앤 융합적 집을 제시했다. 김상선 기자.


홈파티·이벤트…혼자지만 혼자가 아니야
 

관습을 벗어난 1인 가구의 집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는 TV프로그램만 봐도 알 수 있다. 독신 연예인의 일상을 엿보는 예능 프로 '미운 우리 새끼''나혼자 산다'가 대표적이다.

가수 김건모는 거실에 횟집처럼 대형 수족관과 플라스틱 테이블·의자를 갖다놓고 생일 파티를 벌였고, 개그맨 박나래는 클럽 같이 꾸민 집에 지인들을 초대해서는 풀코스급 음식과 술을 내놓으며 '나래바' '홈술'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둘다 집을 사교의 장으로 만들면서 '혼자 살지만 혼자가 아닌' 공간으로 변신시킨 사례다.

규모와 성격만 다를 뿐, 혼자 살면서도 집으로 사람을 불러들이는 이들은 굳이 연예인이 아니라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올 초까지 서울 망원동 다세대 옥탑방에서 자취생활을 했던 성한렬(25·유학 중)씨는 옥상을 십분 활용했다.

이사올 때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었지만 동네 벼룩시장에서 구한 고깃집 테이블과 쇼파 등을 놓고 수시로 번개 모임을 열었다. 친구의 친구까지 서슴없이 부르는 '무작위 초대'에 먹을 것은 각자 알아서 가져오는 걸 원칙으로 삼았다.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 관계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즐거웠던 그는 이를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기기도 했다. 성씨는 "방치된 옥상이 공공장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면서 "80인치 빔 스크린을 놓고 동네 주민들과 영화 상영회를 연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조인숙(39·회사원)도 싱글이지만 종종 집이 북적댄다. TV와 쇼파를 없애고 큰 테이블을 놓은 거실은 친구들과 독서클럽을 하는 공간이 됐다가 맥주 파티 장소가 되기도 한다.

월세로 빌린 단독주택의 마당에서는 친구들의 생일파티나 프로포즈가 벌어진다. 다양한 종류의 파티가 자연스레 열리는 셈. 올 봄에는 마당에서 지인들과 벼룩시장을 준비할 계획이다.

조씨는 "대중교통이 불편해도 마당이 있는 집을 일부러 찾아다녔다"면서 "각자 관심사를 공유하는 옛날 사교클럽 같은 '살롱'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집이라는 사적 공간을 굳이 주변인들과 공유하려는 심리를 어떻게 봐야할까. 서울대 곽금주 교수(심리학)는 "자유로운 싱글이라 하더라도 적당한 관계는 맺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한다.

실제 KB 금용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17 한국 1인 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독신 응답자들은 혼자 살면서 가장 큰 장점으로 '자유로운 생활''혼자만의 여가 활용'을 꼽으면서도 '외로움 등 심리적 안정'을 가장 크게 우려했다.

이런 배경에서 집으로의 초대는 1인가구의 장점을 살리면서 단점을 적극적으로 메우려는 방식인 것이다. 곽 교수는 "공공장소와 달리 집을 개방한다는 건 친밀하고 내적인 관계를 단시간에 형성시킬 수 있는 효과가 있다"면서 "외국에서 크게 품들이지 않는 홈파티가 벌어지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집이 새로운 네트워크의 장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테리어 대상에서 웰 스테잉으로 업그레이드 
 

지금까지 '1인가구의 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는 셀프 인테리어였다. 큰 가구보다 저렴한 소품이나 패브릭으로 멋을 내고, 간단한 도배나 타일 바꾸기에 도전하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혼자 살더라도 집을 잠만 자는 곳이 아닌, 개성의 표현 수단으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음식이나 패션처럼 '보기 좋은 집'에 대한 과시 욕구가 반영되기도 했다. '온라인 집들이' '방스타그램' '집스타그램'이라는 게 흔한 해시태그로 등장한 이유다.

이렇게 '하드 웨어'에 치중하던 1인 가구의 집이 컨셉트를 바꾸고 사교의 장으로 변신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라이프스타일 분야 전반이 다 그렇듯 소비에서 향유로의 변화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무엇을 사고 어떻게 보여주느냐보다 경험과 과정을 중시하게 됐다는 얘기다. 집 역시 예쁘게 꾸미는 인테리어를 넘어서서 그 자체를 하나의 문화로 보는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

가령 북유럽 가구와 소품을 사서 집을 꾸미는 게 과거 유행이었다면 이제는 북유럽의 가족생활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되는 식이다. 덴마크의 라이프스타일 '휘게'가 대표적이다.

명분이 있는 '집들이'가 아니더라도 '의자 하나를 새로 들인 기념' '희귀한 음반을 같이 들으려고' 등의 소소한 이유로 함께 하는 일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예희영 디자인하우스 차장(선임 마케터)은 "1인 가구가 이같은 트렌드에는 가장 유연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면서 "집이 힐링과 소통, 혹은 놀이의 무대가 되는지로 판단하는 '웰스테잉(well-staying)'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여기에 한번 시작된 싱글 라이프가 점차 길어지는 추세도 영향을 미친다. 2016년 BC카드 빅데이터센터가 실시한 모바일 설문조사에 따르면 5년이상 1인 가구를 유지한 고객이 43.9%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1인 가구 탈출 예정 계획이 없는 고객이 23.9%였다.

센터 측은 "초혼 연령의 상승과 더불어 결혼 후에 오는 스트레스, 경제적 부담을 갖기 보다는 차라리 혼자살기를 선택한 비혼(非婚)족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1인가구가 취직·결혼을 앞두고 홀로 살았다면 이제는 하나의 주거 형태로 정착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이야기다.

더이상 집에 대한 로망을 미룰 필요없는 지금, '내 삶을 어떻게 투영시킬 것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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