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분양가 33가지…1층 3억6840만원, 49층 4억2160만원

인쇄

갈수록 세분화되는 아파트 분양가

DA 300

“같은 25평(전용면적 59㎡)이라고 해도 분양가격이 다 달라요. 저층보다는 고층이 3000만원 이상 비싸고, 층수가 같아도 동·호수에 따라 몇백만원씩 차이가 나죠.”

서울 동작구의 사당 롯데캐슬 골든포레 아파트 견본주택을 방문한 이상국(38)씨는 분양 상담을 받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양가가 공개된 입주자 모집공고문을 보고서다.

전용 59㎡ A타입 분양가격이 동과 층수 등에 따라 20가지로 나뉘어 있었다. 다른 타입까지 합치면 59㎡ 분양가만 37가지에 달했다.

이씨는 “층수별로 가격 차이가 있는 줄만 알았지 이 정도로 잘게 쪼개져 있는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아파트 분양가격이 갈수록 세분화되고 있다. 층마다 값이 다르고, 같은 층이라도 아파트의 동(棟)과 향(向)에 따라 분양가 차이가 적지 않다.

건설사들은 1~2년 전까지는 대개 저층(1~3층)과 기준층, 최상층(펜트하우스) 등 3~4개 정도로만 ‘단순하게’ 나눠 값을 매겼다.

정연식 내외주건 부사장은 “예전에는 주택 수요자들이 일조·조망권에 큰 가치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수요자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삶의 질이 강조되면서 일조·조망권, 다양한 평면 등이 아파트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됐고, 이에 따라 입주 후 매매가격이 크게 벌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지난해 9월 입주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는 한강 조망 여부에 따라 집값이 3억원가량 차이가 난다. 지난해 하반기 기준으로 낮게는 16억5000만원, 높게는 19억5000만원대에 실거래됐다(국토교통부).

그러자 건설업체들도 아파트 층수는 물론 동의 위치나 방향, 평면설계 등에 따라 각기 다른 분양가를 책정하고 있다. 수요자의 니즈가 ‘분양가 차등화’ 현상을 이끈 셈이다.

대우건설이 경기도 시흥시에서 분양 중인 시흥 센트럴 푸르지오 전용 84㎡는 분양가가 총 33가지 나온다. 동이나 호수, 층수, 주택 타입에 따라 제각각이다.

층수별로는 1·2·3·4·5·6~10·11~20·21~30·31~40·41~45·46~49층 등 11개로 가격이 구분됐다. 1층 최저가(3억6840만원)와 고층 최고가(4억2160만원)의 차이는 14%(5320만원) 수준이다.

롯데건설이 서울 종로구 무악2구역에 공급한 경희궁 롯데캐슬 전용 84㎡도 모두 28개의 가격대가 존재한다. 동과 호수에 따라 분양가를 달리하고 층수별로 한 차례 더 나뉜다.

대림산업은 부산시 동래구에 짓는 e편한세상 동래명장 832가구(일반분양 물량)의 분양가를 동·층 등에 따라 89가지로 세분화했다.

건설사들은 어떻게 집마다 다른 분양가를 책정할까. 과거에는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업체가 간혹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드물다. 익명을 원한 대형 건설사의 주택 담당 부장은 “예전에 비해 따져야 할 변수가 많아 분양가 산정 프로그램으로 가격을 일률적으로 정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보통 엑셀 등을 활용해 일일이 수기 작업한다”고 말했다.

대개 분양가 총액이나 평균 분양가를 뽑은 뒤 층·향·조망·개방감·주택 크기 등 항목별로 가중치를 둬 분양가를 산정한다. 특히 층수에 가장 많은 비중을 둔다. 조망권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높은 층에선 시야가 넓어져 조망권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건설사들이 층별로 가격 차를 크게 둔다. 고층일수록 상승 폭이 커진다. 그만큼 조망 범위가 넓어져서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들어서는 연희파크 푸르지오 전용 59㎡의 경우 3층과 4층은 500만원 차이가 나지만 4층과 5~9층은 900만원, 9층과 10층 이상은 1400만원씩 분양가 격차가 벌어진다. 여기엔 단지 주변에 있는 안산 도시자연공원 조망권이 작용했다.

윤중묵 대우건설 주택공공사업팀 과장은 “대개 20~30층짜리 아파트는 저층과 최상층 간 분양가 차이가 10% 안팎인데 산이나 강, 공원 조망이 가능하면 차이가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한강·바다 보이는 곳은 20%까지 나


한강이나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아파트는 분양가 차이가 20%까지 난다.주택 방향도 중요한 요소다. 한 대형 건설사는 수도권에 공급한 아파트 분양가를 책정할 때 남향(100점)을 기준으로 남동향은 99.5점, 남서향은 99점 등의 가중치를 뒀다.

최근엔 업체들이 남향 위주로 짓기 때문에 신규 분양단지 중 동향과 서향은 흔치 않다. 다른 건설사도 이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경기도 오산시 서동탄역 더샵 파크시티 전용 74㎡(기준층)의 남동향 분양가는 2억9940만원이고 남서향은 이보다 0.4% 싼 2억9820만원이다.

방향에 따른 가격 차이는 일조권 때문이다. 업체들은 대개 거실을 기준으로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햇빛이 들어오는 시간을 따져 가구별 일조량을 계산한다.

남향이 가장 많고 남동향, 남서향 순으로 비싸게 매겨진다. 지역별로는 서울·수도권보다 지방에서 차등을 더 많이 둔다. 박상현 포스코건설 마케팅기획팀장은 “단지나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향과 개방감에 따라 최대 2% 정도 가격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주택 타입도 분양가 책정 때 고려 대상이다. 타입은 조망·향·개방감과도 떼려야 뗄 수 없다. 최근 선호도가 높은 판상형은 남향 위주 배치가 가능해 채광과 통풍 효과가 뛰어나다.

하지만 ‘ㅡ자’ 구도라 앞 동에 가려 꽉 막혀 있는 느낌을 준다. 반대로 탑상형(타워형)은 ‘Y’ ‘□’ 등 다양한 구조로 설계가 가능해 조망권이 좋은 반면 향은 고르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판상형 분양가가 탑상형보다 1~3% 정도 비싼 편이다. 김연욱 롯데건설 분양소장은 “탑상형 분양가가 판상형보다 높은 경우도 있다”며 “햇빛이 잘 드는지, 집 앞이 탁 트여 있는지, 조망·경관은 좋은지 등을 고르게 따져 결정한다”고 말했다.

분양가 세분화 추세는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덕례 실장은 “집의 실용성과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이 확산되면서 층·향 같은 항목 외에 옵션(선택사양) 등을 통한 가격 세분화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경희궁 롯데캐슬 전용 84㎡ 중 개방형 발코니를 갖춘 가구는 7억8500만원(8층 이상)으로, 그렇지 않은 같은 층수 분양가보다 1500만원 비싸다.

전문가들은 분양가가 너무 잘게 쪼개지면서 수요자가 적정 가격을 판단하기 어려워진 측면을 우려한다. 청약 전에 최소한 해당 단지와 비슷한 조건을 갖춘 주변 단지 시세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업체들이 평균 분양가가 싸다는 식의 홍보를 많이 하지만 알고 보면 자신이 원하는 주택형은 비싼 경우가 많기 때문에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광고